정조의화성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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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빤강남스타일 조회 2회 작성일 2020-11-26 07:07: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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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한국사 I 229 정조의 화성 건설 ? 노론 세력을 견제하다

정조 13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의 명당으로 이전했다. 사도세자의 복권 작업은 정조 평생의 숙원이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할 때마다 슬픔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버지에 대한 원통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정조의 모습을 지켜보던 노론 대신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심환지, 김종수, 이병모 등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정치적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당시 노론세력들은 북촌 일대에 거주하면서 한양을 지배하고 있었다. 북촌의 노론들은 종로일대의 상권을 장악하고, 이익을 독점하며, 응집력을 키웠다. 한양을 지배하던 노론에 맞서 정조가 선택한 것이 수원이었다. 정조 18년, 정조는 신하들을 대동하고 팔달산에 올라 화성 건설을 명한다. 대규모 행궁이 설치되고, 도시 외곽으로는 6km에 달하는 거대한 성곽이 건설됐다. 정조는 또 경제개혁 조치를 통해 노론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수원을 상업도시로 발전시켰다. 화성에는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외영도 설치돼 6천여 명의 병사들이 배치됐다.

#정조 #수원화성 #건설#노론 #세력 #심환지 등 견제#북촌 거주 노론 종로 상권 장악

건축 신기재의 기적 수원화성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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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만평 대지 위에 세워진 정조의 계획 도시 화성. 5.7km에 이르는 성벽 100m마다 각종 방어시설을 갖춘 화성은 군사용 성이면서도 아름다운 위용 갖추고 있다. 놀라운 건 이 방대한 건축물이 28개월 만에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10년 계획을 2년 반으로 앞당긴 경이로운 공기단축은 조선의 과학정신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조선후기의 실학사상은 화성에서 건축과 결합해 놀라운 꽃을 피운다. 과학적인 설계공법과 새로운 기계들이 시도되면서 토목건축의 백미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중 거중기는 도르래를 이용해 물체의 무게를 1/8로 줄이는 획기적인 건축 장비로써 실학사상의 상징물로 꼽힌다. 또한 다산 정약용이 개발한 녹로는 현대의 지붕 크레인과 같은 원리로 이를 통해 당대엔 없던 높은 건축물을 쌓을 수 있게 했다. 실학의 거대한 실험장이 된 수원 화성을 통해 조선의 끝없는 과학정신을 살펴본다.

[조선시대] 역사채널e - 정조의 화성 행차를 완성시킨 배다리 프로젝트

조선시대 - 정조의 화성 행차를 완성시킨 배다리 프로젝트

한양에서 수원 화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불가능한 도전을 가능하게 해준
배다리 프로젝트에 대해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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